Where have I been?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그 것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진실, 꼭 알아야 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의 무책임, 허기지고 뚫린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
알아가면 알수록, 배우면 더 배울수록 계속 소멸되어가는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아직은.
흔히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을 할 수 있다고 한다. garbage in garbage out 이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오 듯, 정보가 들어가면 꼭 아웃풋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풋이 되어도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 

난 지금 화가났다. 눈썹이 양 끝으로 치켜세워져 있고, 똥씹은 표정으로, 아랫입술만을 꽉 깨물고 있다. 심장이 쪼여오듯 가슴이 아파오고 숨을 쉴 수가 없다. 마음은 조금해져가지만 아무것도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을 보고있다. 할 수 있는거라곤 손톱 물어뜯기와 머리털 하나씩 뽑기, 의자에 푹 꺼진듯 도서관 책상에 앉아 책을 만지작 만지작 하고만 있다.  
'그것'은 지금의 날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있다. 

나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과를 내린 경험이 인생에서 몇번이나 있을까. 이거 아니면 저거의 선택으로써가 아닌, 깊고 신중하게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끝의 고지까지 올랐던 경험. 또는 생각.
충분히 나 혼자 사유하고 결론까지 끌어내린 기억은 나에겐 없다. 모든것이 읽은 것들, 본 것들, 들은 것들, 만진 것들, 느낀 것들 뿐 '그것'은 내 것이라 말 할 수가 없다. 나는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들을 내것이라 믿었고 그렇게 얘기했을 뿐 내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로 정의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체험 할 뿐이다.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가 종교를 갖게되어 '그것'을 체험하면 그는 그 길을 갈 것이고, 누군가는 신비로움에 빠져 '그것'을 체험하게 된다면 그또한 그 길을 갈 것이다.
내 가치관과 세계관은 모두 '그것'으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처음부터 몰라도 되는 것들, 몰랐어도 되는 것들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것들을 몇명이나 알려고 할까. 또 아는 사람은 몇명이 될까. '그것'을 깨닫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검증된 예술작가들은 '그것'을 알기때문에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일까? 꼭 '그것'이어야만 예술로써 승화되는 것인가? '그것'은 대관절 무엇인가.

만약 알기위해 '그것'을 내 도구로써 사용한다면 난 정말 천벌받겠지. 물론 도구로 사용할 만큼 '그것'이 쉽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생각할 가치도 없지만, 그래도 생각해봐야한다.
'그것'을 알기위해 갈구하는 것인지, 나를 위해 '그것'을 알고싶어하는 것인지.

지식이란 것은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 처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았다.
어차피 난 '그것'이 뭔지도, 체험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모르는 것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답답하게 자리잡은 것들 모두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기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꼭 체험해야 한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끊임없는 독서가 그리고 신앙이 제일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이유에서일런지도 모른다.

2011년 9월 25일 일요일

[은해사]다르게, 그대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은해사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큰 나무와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여있어 온 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길 옆으로 흐르는 냇물도 시원한 물바람을 만들어줘 흐르는 땀을 씻겨줬다. 멋지게 솓은 높은 나무는 햇빛을 막아주고 산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은해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능이 50여일 남아서인지 수능 100일기도 현수막이 붙어져 있었다. 수험생을 둔 어머님들은 절에 들어가서 염불을 외거나 기도를 했다. 
보기보다 등산객들보다는 불자들이 많이 있었고 연인들보다는 가족들이 많이 모였다. 

기기암은 은해사에서 2.4km 더 올라가야 볼 수 있었다.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40분 정도 소요된 시간은 2시간은 오른 것 처럼 느겼다. 
산 중턱에 위치한 기기암은 적막하고 고요 할 줄 알았지만, 건물 한 채를 더 짓느라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글라인더소리, 포크레인소리 등 요란했다.

등산을 하고 하산을 하면서 당연한 것에 당연함이 감사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무도 저 자리에 계속 자라났으며, 햇빛은 어디라 할 것없이 구석구석 다 비추었다. 공기는 폐까지 씻겨줄 만큼 상쾌했고 아무 생각없이 고민없이 걸었던 것 같다.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
사물 그 자체...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미하든 아직은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 빛으로 덮힌 사물의 표면을 보는 것 아무 상징도 의미도 담지말라는 얘기는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만 어렵다.
고정관념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 단어를 읇고, 누군가 사진을 보여 줄 때 과연 단어 그대로 사진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걸까. 
가령 '송아지' 라는 단어가 있을때, 송아지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은 송아지란 이름을 듣거나 보았을 때 자신이 정리한 개념의 송아지를 볼 것이고 그렇게 단정지을 것이다. 
예를들어 시골에서 송아지와 보며 자랐던 사람들은 가족같은 동물이라고 생각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런 추억도 없기에 무섭거나 냄새나는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이라고도 생각 할 것이다. 이미 송아지의 실체는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아무 선입견 없이 감정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본 다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은해사에 떨어진 빛을, 나는 최대한 감정으로 먼저 다가가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려했지만 역시나 어려운 부분이다. 카메라를 올렸다가 셔터를 누르지 않고 내려놓기가 일쑤였다.
모든 예술은 구성에서 나온다는 이박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최대한 구성을 잘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 계속 고민이었다. 특히 클로우즈업은 어떤 대상을 촬영해야 할지 가장 어려웠다.

다른사람들도 볼 수 있는 그림보다 남들과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촬영한 사진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곳에 갔다면 비슷하게 볼 것 같다. 
다르게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있는 사물들의 추상적 개념보다 '무'의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는 훈련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아래 사진들은 내가 본 은해사와 기기암

은해사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기기암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은해사 2011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팔공산 봉화사] 본다는 것은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급행 1번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들렸던 소리는 엠프에서 울리는 노랫소리었다. 오늘 동화산 밑자락에서는 가을산행축제로 인산인해였다. 노래 부르는 아주머니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흥겨운 노랫가락에 춤을추고 아저씨들은 술한잔 걸치면서 분위기를 만끽했다. 
미리 준비되었던 행사였는지 순서에 따라 장기자랑을 보여줬고 옷을 맞춰 나온 팀들도 더 흥을 복돋아주었다. 움직이면 약간의 땀이 날 정도의 날씨었지만 등산객들 모두 즐겁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동화사 입구 2011

동화사 입구 2011


동화사 입구 2011

동화사를 찾은 시간은 약 13시경이었다. 동화사를 돌아다니면서 구성과 빛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찾아보며 생각했다. 도착했을때는 해가 너무 강했고 약간의 구름이 끼어서인지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들죽 날죽이었다.
여러가지를 고려하며 촬영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떻게 찍어야 할 지 무엇을 보여줘야 할 지 건물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어떤것인지 내 내면에 미묘한 감정과 세밀한 감성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풀샷은 어떤 그림이 괜찮을지, 클로즈업은 어떤 그림을 넣을지 계속 생각하니 이미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빛의 움직임에 반응하면서 판단 없이 상상 없이 있는 그대로를 촬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어떤 부분을 잘라야하고 어떤 부분을 넣어야 할 지 고민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초초해지기도 했다.
본다는 것은 많은 사유와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물론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을 찍을 뿐이지만 보는 직관과 감수성과 잘 이해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이 필요 하다. 이것이 어느 분야에서든 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가춰야 할 능력인 것이다.
지금은 너무 부족하고 더 많은 사고와 다독 다작을 통해 내면을 더 강화시켜야 할 것 같다.


아래 사진들은 내가 본 동화사의 건물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화사 2011


동원사 2011

동원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