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have I been?

2011년 12월 9일 금요일

불국사, 바라보기


 내 또래 학생이라면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시절 대표적인 소풍 장소를 꼽으라면 경주라고 떠올릴 것이다. 소풍 하면 경주밖에 가지 않던 시절이라지만 그때는 갔던 곳을 또 가더라도 소풍이라는 단어에 마냥 신났다. 
 대표적으로 불국사, 석굴암, 하회마을 등 옛 한국전통가옥이나 사찰을 봤었다. 손에는 수첩과 볼펜을 들고 목에는 가정용 필름 카메라를 걸고 친구들과 떠들면서 열심히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소풍이나 여행을 갈 기회는 멀어지고 더군다나 한국가옥이나 사찰은 산 중턱에 있기에 운동 싫어하는 사람들은 점점 관심거리에서 멀어지기만 한다. 그래도 찾는다면 조금이나마 잘 찾아왔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비록 이런 곳에서 살지 않았지만 옛 선조들의 피가 나에게도 흐르기 때문에 외국 관광객이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과 달리 친숙하게 느껴진다.

 대학생이 된 이래 처음 불국사를 찾았는데 초등학생 때 기억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특히 불국사 앞에서 찍은 정형적인 사진. 누구나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6학년 3반 앨범을 찾아보니 남자셋 여자셋 나란히 찍은 기념사진이 남아 있다.

 이번학기 과제로 요즘 전통가옥을 많이 찾고 있는데, 최종 과제물로 불국사에서 촬영한 사진을 제출하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없다. 단지 가깝다는 이유이다.

 역시나 건축을 촬영한다는 것은 어렵다. 카메라는 실재의 재현 도구이지만, 재현을 넘어서 다르게 보고 깊이 있기 봐야한다. 바라보는 것이 그만큼 신중하고 세밀한 작업이다. 하지만 난 아직 멀었다. 
 불국사는 사찰이지만, 사찰이라는 의미를 두고 촬영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재현을 하지 말아야한다. 기록 사진으로 남겨두고자 함이 아닌, 나만의 시각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과제가 미뤄졌다. 더 보충해서 촬영하고 지속적으로 다른 한국건축도 촬영해야겠다는 다짐뿐이다.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양동마을


 옛 선조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는 양동마을, 지금도 그 자리에 사람들이 거취하고 있다. 밥냄새, 옷냄새, 빨래 걸어놓은 모습까지 옛 모습 그대로이다.
 가을이란 날씨로 하늘은 더 높고 더 푸르고 더 맑다. 오늘이 바로 양동마을을 제대로 조명하고 있는 날인듯 하다.








 날씨며 풍경이며 다 좋지만 한가지 불만이었던 점은 식당이었다. 된장을 직접 담그고 만든것을 판매하거나 또는 한가지 메뉴로 한끼 식사를 할 수 있지만, 한 명은 안된다고 한다. 이곳만 식당이랴, 다른곳으로 가봤지만 처음 발을 들인 순간에는 앉으라고 하지만 남편인 듯 싶은 아저씨가 "한 명은 안돼~ 사람들 더 들어오는데 어떻하라고"라며 마치 들으라고 하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빈정상해서 나가려고하자 "아,아 들어와요"라고 한다. 대꾸않고 소심하게 나왔다.










양동마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왔다. 내가 본 외국인은 일본인, 중국인, 영어권 나라의 서양 외국인이었다.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Window view in train

때로는 불안하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저서 '닥치고 정치'에서 우파의 태도는 '불확실성'에 있다고 한다. 앞에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밀림을 걷고 있기에 불안하고 공포감이 들기 때문에 그 공포를 통제 하지 못해서 그로 인한 문제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불확실성은 논리로써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미신이나 굿, 토템이나 종교의 힘을 빌린다고 말한다.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를 매일 문득문득 가슴에서 일어 난다. 행복이란 것은 사치일까.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난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내가 재미있어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 또한 사치스러운 질문인 것인가.

아마 더 솔직한 이야기라면, 자신이 없다. 해 낼 자신이 없다. "주제에 내가 문턱이나 갈 수 있겠어"라는 패배 의식에 익숙해진 것 인지도 모른다.  안될 수도 있으니까. 그럴 능력도 없고.

  2학기 수강과목 중 '삶과철학' 강의에서 행복에 대한 염원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3가지 조건이 있는데 첫째는 자아 실현이고 둘째는 스스로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 받을 때, 세번째는 인간 관계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면 누구나 타고난 이성의 소질을 충분히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행복이 실현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을 위해 떳떳한 구실을 하는 필요한 존재라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기에 직간접으로 교섭을 갖기 마련인데, 이 대인관계가 원만하거나 그렇지 못하는 것은 행불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난 세가지 종목이 모두 부족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행복하지도 않지만 장래 걱정도 되니 말이다.

새마을호를 타고 새벽 기차 여행을 한다. 매일 해는 뜨고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지구는 돈다. 열차가 달리는 만큼 나 또한 달리는 중임을 믿고 싶다.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도산서원, 한국적인 것.


통 잠이 오지 않아 그동안 밀려서 보지 못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4편을 연달아 봤다. 봐도봐도 배우들의 감칠나는 연기력과 흥미진진한 전개는 다음편을 절실하게 기다리게 했다.

특히 한석규의 세종 역할은 정말 놀랍다.

이 드라마 덕분에 조선 역사에 관심이 생김과 동시에 사진 과제로 주말이 되면 전통건축을 찍고 있는데 조금 더 흥미를 돋울수 있었다.

뜬 눈으로 밤지새우며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양동마을로 가기로 했던 계획을 바꿔 도산서원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경산 하양역 

경산 하양역

도산서원 시사원

우연히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현장 견학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진찍던 나를 낯설게 보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도산서원 시사원.

도산서원 시사원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익혔던 모습, 사색에 잠겨 하늘을 바라봤던 모습,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 모습, 동료들과 함께 장난하던 모습, 글을 외던 모습, 세수하는 모습, 밥을 먹는 모습, 잠을 자던 모습, 장작떼는 모습 등 내 눈앞에서 조선의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박물관에 전시된 이황 선생님의 친필로 작성된 책을 보면 그때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듣지 않았지만 이황의 말투가 생각이 나고, 보지 않았지만 그때의 가르치는 모습이 생각 난다. 느껴보지 않았지만 그때의 상쾌한 공기가 지금도 난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동광명실
 
도산서원 장판각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진도문
 
도산서원 서재-홍의재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농운정사

도산서원 농운정사

도산서원 삼문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상덕사

도산서원 삼문

도산서원 상덕사

도산서원 상덕사

도산서원 삼문


도산서원 동광명실

도산서원 동광명실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서재-홍의재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삼문

도산서원 삼문
 
도산서원

도산서원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도산서당

도산서원 상고직사
 
도산서원

도산서원

도산서원

도산서원 시사단
 
도산서원